마르크스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혁명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 즉 착취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이라 말한다. 노동자들이 일어서 폭력을 통한 국가 전복만이 자본가들의 몰락과 이상적 국가 건설 실현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수의 사상가들은 마르크스의 견해와 달리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에 의한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의 견해에 한계를 지적한 회의론자들은 노동자들이 그들 문제를 스스로 극복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가난한 이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변한다. 고급교육의 기회에서 제외되고
사회와 정치적 문제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박탈당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보지 못하고
다만 피상적인 현실 문제에 집착하게 된다 . <유한 계급론> -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
공산주의가 지독하게도 물고늘어져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노동자가 착취당하는 현실이였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착취의 원인을 생산수단의 개인소유로 보았고
다수의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로부터 빼앗아 국유화를 통해 노동자의 정부가 이를 일괄적으로 관리및통제하려 했다.
알다시피 공산주의의 이러한 시도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생산수단의 집중화는 독재정부를 낳았고 독재정부에 의한 통제는 비효율과 정부실패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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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수단의 개인소유는 어디까지 인정되어야하는가?
소유권0% 를 주장한 공산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이라는 본능을 배제한 댓가로 비참한 국가의 몰락을 교훈으로 남겼고
소유권의 자유로움을 주장한 오리지널 자본주의는 소극적 자유를 추구한 야경국가는 가진자와 그렇지 못한자로 나뉘어져 현대사회가 봉건주의사회의 계급구조로 회귀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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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수단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을 노동하는 데 사용하지만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들은 노동에서 자유로워져 자신의 삶을 찾을수 있다.
노동에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냐고 반문하는 이들은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강조는 사회 구성원들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노동의 대가로 최소한의 삶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노동의 신성함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비열한 행위는 없다.
사장이 직원에게 노동의 신성함에 대해 논하고 노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라는 식의 논리가 웃기지도 않는 이유이다.
자본주의의 갈등 내용은 변화했다 과거 생산수단 소유여부에 대한 갈등이였다면
오늘날에는 주주자본주의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에 대한 양적 측면의 갈등이 되었다.
시민에게는 의무가 있다.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의 이익을 고려해야하는 책임이다.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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